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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대담]“따뜻한 세상 위해 언제든 노래할 것"

보도일자 : 2016-12-21

보리스 아발랸 그라시아스합창단 수석지휘자
2008년 첫 연 맺고 세계 최고 합창단으로 이끌어
미국·유럽·아프리카 등 연 30개국서 하모니 선사
"단원들과 함께 공부…깨끗하고 정돈된 음악 강점"

 

그라시아스합창단 2014년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 모습.
케냐 나이로비주의 한 공연장.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이 한 창이다. 관객석엔 바이올린을 처음 본 사람도, 피아노 선율을 처음 듣는 이들이 가득이다. 그 중에 한 소녀가 울고 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 뚝 흘리면서.

사연은 이렇다. 급작스럽게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소녀는 “칸타타 공연을 끝으로 삶을 져 버리겠다”는 위험한 결심을 한다. 생의 마지막을 칸타타 공연을 보기로 한 것. 그런데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은 소녀는 이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예술이, 음악이 지닌 기적 같은 힘이다.

그라시아스합창단은 이 같은 음악의 에너지를 지구촌 곳곳에 전한다. 2008년부터 연을 맺고 그라시아스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보리스 아발랸 지휘자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라며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는 이 부드럽고 따스한 음악적 에너지는 그 어떤 악기 보다 진한 감동을 전한다”고 말한다.

그라시아스합창단은 매년 미국, 유럽 뿐 아니라 아이티·아프리카 오지에서도 무대에 선다. 1년에 순회하는 나라만 해도 30여개. 그럼에도 이들이 고국에 들어오는 시즌이 있으니, 바로 겨울이다. 연말을 맞아 전국 곳곳에 감동의 하모니를 전하기 위해서다.

‘크리스마스칸타타’ 공연을 위해 광주를 찾은 보리스 아발랸 지휘자를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나봤다.

-세계적인 합창 지휘자로 알려져 있고, 또 많은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습니다. 합창이 다른 클래식 음악 분야들과 다른 매력은 무엇입니까?

제가 평생 합창을 했던 이유는 사람의 목소리가 좋아서입니다. 목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악기죠. 러시아에서는 바이올린이나 클라리넷 등 악기를 가르칠 때 ‘연주하라’고 하지 않고, ‘불러보라’고 표현하죠. 이처럼 사람의 목소리로 표현되는 합창은 인간의 감정을 다양하게 담고 있습니다. 달콤한 사랑도, 악에 바친 미움도, 슬픔도, 온갖 감정들을 표현해낼 수 있죠.

또 합창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것은, 제가 러시아 출신이란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합창은 음악의 첫 시작이었어요. 특히 러시아 종교음악을 보면, 교회에서 어떤 악기도 사용하지 않아요. 오직 사람의 목소리로만 찬양하죠. 저마다 몸속에 내재된 음악적 에너지가 만나 아름다운 하모니로 터져 나오는 것, 바로 그것이 합창의 가장 큰 매력이죠.

-음악적인 측면에서 그라시아스합창단의 음악이 다른 합창단의 음악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그라시아스합창단의 음악에는 어마어마한 열정이 묻어납니다. 6여년 함께 하면서도 늘 감탄하는 부분이죠. 이들은 늘 노력하고 있고, 계속해서 발전하는 중이에요. 이것은 한국인이 가진 특성인 것 같아요. 최고를 향한 최선의 노력과 끈기가 대단하죠. 또 단원들은 참 순수하고 깨끗해요. 개인적으로 ‘내가 참 운이 좋구나’란 생각을 가질 정도로요. 음악적으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든지 무엇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친구들이에요.

이런 부분들이 지난해 마르크트오버도르프 국제합창대회 최고상 수상 등 영광의 순간들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작곡가의 음악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해요. 누구도 속이려하지 않죠. 하나의 소리를 내는데 집중합니다. 음악적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작곡가의 의도대로 음악을 받아드릴 때 생기는 생각, 신념에 대해 합창단 내부적으로 조율해 내는 과정도 정말 중요하거든요. 이를 위해 단원들과 늘 함께 곡에 대해 공부해요. 콩쿠르 수상에 대한 대외적 평가도 ‘그라시아스는 깨끗하고 정돈된 음악을 한다’는 것이에요.

-100여명의 합창단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가장 지향하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합창 공연을 보면서 ‘진리’를 듣고 싶어요. 작곡가가 곡을 쓴 것은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나 다름 아니에요.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한 것 처럼, 작곡가는 음표로서 음악적 세계를 지은 것이죠. 그 안에는 역시 기쁨, 슬픔, 분노, 사랑 모든 것이 존재할 것이고요.

하지만 작품을 구성하는 ‘음표’들이 이를 표현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악보는 그저 ‘죽어있는 세상’ 또는 ‘잠들어 있는 세계’일 뿐이죠. 이곳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한 세계를 깨우는 것이 바로 지휘자와 단원들의 몫입니다.

제 지휘는 죽어있는 세상을 움직이는 최초의 ‘노크’가 될 것이고요. 단원들과 함께 작곡가가 곡 안에 담아 낸 ‘진리’를 내보이는 데 집중합니다.

-그라시아스합창단 공연이 가진 음악적 힘을 느낀 순간이 있다면요.

아프리카나 오지 등에서 공연을 하면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본 사람도 첼로를 처음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처음에 그들은 “이게 뭘까?”란 호기심을 보이다가, 이내 합창과 어우러진 하모니를 들으면 모두 좋아하죠. 악기 이름이 무엇인지, 합창이란 게 무엇인지, 음악적 지식이 없어도 이들이 박수를 보내주는 것은 인간 본연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혼이 있기 때문이에요.

베토벤, 바흐, 모차르트 이런 위대한 작곡가들이 작품을 만들었을 때는 그 자체가 존엄하고 아름다운 세계일 수밖에 없어요. 이 세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발현할 수 있는지, 합창이 보여주는 것이죠.

작곡가가 만든 아름다운 세계를 오롯이 매개할 때 진한 감동이 전해진다고 봅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방향으로 관객들을 이끌 때 음악적 힘이 발현되는 것이죠.

-그라시아스합창단의 대표 공연인 ‘크리스마스 칸타타’는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많은 관객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 공연을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한국의 음악팬들에게 어떻게 소개하고 싶습니까?

공연이 끝난 뒤 우리에게 쏟아지는 박수는 ‘기쁨의 에너지’에 대한 응답이라 생각해요. 세상에는 많은 악이 있고, 고통, 슬픔 등 나쁜 것들이 있어요. 이 같은 기운은 점점 더 심해지고 커져가는 것 같고요.

우리의 ‘크리스마스 칸타타’는 선을 깨우고, 밝음을 전해주는 공연입니다. ‘비타민’을 먹듯이 에너지를 받는 것이죠.

한국 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라시아스합창단은 특별하고도 유려한 메시지를 전한다기 보단, 그저 많은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삶이 힘들다면, 일상에 너무나 지쳤다면 우리의 공연을 보고 힘을 얻었으면 합니다. 단지 그것뿐이에요. 우리들의 음악으로 세상이 따뜻해진다면 언제, 어디서든 노래 부를 준비가 돼 있습니다.

△보리스 아발랸(Boris Abalyan)그라시아스합창단 수석지휘자는
-러시아공훈예술가
-글린카 성악학교·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졸업
-레게 아티스 실내악단 설립
-독일 마르크트오버도르프 국제합창콩쿠르 최우수 지휘자상 수상
-부산 국제합창제 최우수 지휘자상 수상
-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교수

△그라시아스합창단은?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2000년 국내 클래식 발전을 위해 창단, 2013년 사단법인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국내에서는 연 5회 이상 세계 거장들과 함께하는 클래식 정기연주회를 펼치고 있으며 연말 32회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지역 순회공연으로 팬들을 만난다.

음악의 전문성과 예술성 추구를 넘어 매년 미국·유럽뿐 아니라 동남아, 중남미의 아이티, 아프리카 빈민촌 등 매년 30개국에서 100회 이상의 공연을 올리며 클래식의 대중화, 음악교육사업, 청소년을 위한 자선공연 및 음악을 통한 민간문화교류 등에 앞장서고 있다.

그라시아스합창단은 르네상스시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나라의 민요와 가곡에 이르는 폭 넓은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합창의 정수인 종교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를 소화하고 있으며 현지어로 그 나라의 민속 음악을 노래하면서 지구촌 곳곳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2009년 제주국제합창제, 2010년 부산 국제 합창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2012년 베이징 국제합창제에 스페셜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2014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열린 ‘리바 델 가르다 국제 합창제’에서 그랑프리, 스위스 ‘몽트뢰 국제합창제’에서 혼성 부문 1등상을 차지했으며 2015년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합창제인 독일 ‘마르크트오버도르프 국제합창제’에서 최고상을 수상, 대한민국 합창의 위상을 알렸다.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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